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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장애인기자로서 살아남기

by 푸른비(박준규) 2007. 10. 13.

부제: 장애인기자가 알아두어야 할 기본상식들

 

장애인이 그것도 중증 또는 중복장애를 갖고 사는 장애인이 기자생활을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통 기자라고 하면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말솜씨와 글 쓰는 재주가 있어야 하며 밤낮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 할 수 있는 체력이 기본 돼야 시간을 다투는 현장에서 기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경우 기자의 기본 자질에서 적어도 한 두 개를 잃고 들어간다. 즉 몸이 불편해 이동성이 약하거나 발음이 부정확해 취재원들과의 대화가 어렵다는 점이다. 비록 이런 한 두 가지지만 기자활동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중증장애인기자가 알아 두어야 할 기본상식들

 

여기서 지목한 중증장애인들이란 나처럼 언어와 행동장애가 있는 중복(뇌병변)장애를 갖고 생활하는 사람들임을 밝힌다.

 

첫째, 깔끔한 외모로 최대한 좋은 인상을 취재원에게 보여라.

 

중복장애인들은 어떤 행동을 해도 눈에 띠게 되며 특히 뇌병변장애인들은 자칫 장애인 외판원들로 취급 받기 쉽다. 본인의 경우 처음 지역신문사에 입사해 취재활동을 나가 숱하게 격은 안 좋은 기억중 하나다.

 

예를 든다면 카메라 가방에 캠코더 가방, 취재할 내용이 담긴 서류철까지 들고 취재를 나가면 처음 대하는 취재원들은 아래위로 한 번 나를 훑어보고 한마디 한다. ‘오늘 장사 안 됐으니 나가요!’ 또는 귀찮다는 듯이 대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첫 눈에 내가 그들에게 비친 이미지는 바로 잡상인 또는 귀찮은 장애인에 불가해서다. 그 만큼 장애인이란 사람들은 첫인상부터가 깎여 버리기 일쑤다. 해서 최대한 깔끔한 용모를 갖추고 취재원을 만나야 한다.

 

그래서 요즘 나는 취재를 나가기 전 거금 1,000원에서 1,500원을 주고 미용실 가서 머리를 단정히 묵고 최대한 깔끔을 내고 취재를 나간다. 머리를 짧게 자르면 되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것보단 단정히 묵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이다. 이렇게 하고 나가면 그렇치 않았을 때보다 취재원들의 반응이 조금 달라진다. 최소한 대충의 차림으로 대하는 것보다 대우(?)를 해준다고나 할까?

 

둘째, 밝은 표정과 또박또박 발음을 해라

 

기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인 의사 표현. 즉 언어전달이다. 여기서 난 또 한 번에 좌절을 맛봐야 했다. 요즘도 초면인 사람들과의 대화에선 진땀이 난다. 허나 그들 앞에선 당당히 대하여 내 틈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그들이 내 말을 잘 알아듣지 못 한다면 최대한 발음을 정확하고 크게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의사표현이 안 된다고 주눅이 들어 더 쩔쩔 맨다면 그 취재원과의 인터뷰는 실패요, 관련 기사의 내용도 충실치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다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취재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상대방에서의 상처가 될 말이나 표정을 받더라도 과감히 그 자리에서 잊는 단순함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상처만 남게 된다.

 

셋째, 각종 기록 도구를 챙겨라

 

일반 취재기자들은 준비물이 단순할 때가 많다. 간단한 행사나 사건 취재라면 쉽게 요점만 기록할 수 있는 수첩과 볼펜, 카메라 한 대가 전부일 수 있지만 나 같은 장애인에게는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도구들이 몇 가지 있다. 일단 필기하기가 힘드니 소형녹음기가 필요하고 손떨림이 있어 카메라 삼각대는 필수가 되며 기억력을 보충해 취재할 내용이 담긴 서류철까지 챙겨줘야 준비가 대충 끝난다. 이런 와중에 간혹 어떤 취재원들은 녹음기에 대한 거부감을 표할 때가 있다. 이런 땐 나도 참 곤욕이라서 최대한 양해를 구하고 부분적으로 녹취해야한다. 필기만 해도 될 내용이지만......

 

넷째, 어디 소속기자인지 확실히 인식시켜라

 

요즘을 떠나서 예전부터 일명 사이비 기자들의 횡포(?)로 어디 가서 기자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본다. 거기다 보기에도 미덥지 않은 장애인이 와서 기자라고 하는데 곱게 봐줄 턱이 없다. 그래도 자신이 속해 있거나 활동 중인 언론사 또는 매체를 자신 있게 밝히고 취재원이 그곳을 몰라 한다면 구체적인 설명까지 해주어 인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럴 때 그 흔해 빠진 명함 한 장은 나에겐 그 어떤 것보다 든든한 내 신분증이 될 수 있다.

 

다섯째,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놓치지 마라

 

기자가 그래도 타인들에게 인정(?) 받는 이유는 세상사에 해박함이 있어서이다. 허나 요즘은 전문기자라 하여 어느 특정분야만 전문적으로만 알아도 되지만 그들도 최소한의 세상사는 남들보다 많이 알고 있다. 특히 나 같은 뇌병변 장애인 중에는 조금 기억력이 가난해(?) 많은 걸 기억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이럴 땐 반복학습을 통해서라도 정보들을 계속 접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요즘 인터넷 지식검색이나 각종 뉴스들만 보고 있어도 남들과의 얘기에선 뒤처지진 않는다.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한다.

 

대략 위에 다섯 가지부터라도 확실히 할 수 있으면 최소한의 장애인기자의 기본자세는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현대사회는 과거에 비해 장애인에게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장애인 본인들의 의지만 있다면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있다는 의미다. 이런 현실에서 더 이상 방에서만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하고픈 나만의 얘기를 과감히 사회에 내뱉는 삶을 살아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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