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비(박준규) 2011. 2. 15. 02:11

- 검은 도화지

 

 

어릴 적

수년을 그렸던 내 그림에는

늘 사색(四色)이 있었지.

 

하얗고 넓었던

깨끗한 흰 도화지

흑색 선 만으로는 밋밋해

두껍게도 덧바른 사색 물감에

숨 막혀 했던 내 그림들

끝내 퇴색돼 버린 내 그림들

 

하지만 하늘은

볼 것 없이 어둡고 음침한 하늘은

별들로 밑그림 그리고

달빛으로 물 들여가며 그림을 그리는 구나

사색보다 많은

오색 별빛의 사치(奢侈)를 써가며

 

진즉

저 검은 도화지를 알았더라면

나도 멋진 화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

어릴 적 흰 도화지에 화병(火病) 나는 이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