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욕 예찬
적막한 집안에
며칠 째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과 낮에는 집을 비워 들을 수 없지만
깊은 밤과 새벽에는
수면을 방해할 만큼의 큰 소리로
욕실의 울림을 타고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 때
저 소리는 너와 내가 세속에 찌든 몸을 씻고 나왔을 때
욕실서 잠시 나다가 그친 상쾌한 소리였지만
며칠 째 초침만큼이나 정확한 주기로 들리는 저 소리는
문득 문득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오늘 새벽엔 꿈을 꾸었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져 욕조를 가득 채운 물속에서
어김없이 너와 나는 깔깔대며 몸을 씻었고
우리 몸에서 벗겨진 탐욕의 각질들은 검은 덩어리로
하얀 비누거품에 엉겨 욕조 안을 떠다니다가
그 탐욕의 때는 어김없이 미끌거리는 안도를 주었다.
아침이 올 무렵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켜지는 티브이
며칠째 첫 소식은 오늘의 날씨다.
잠결에 들으니 오늘 아침 기온도 영하 몇 도라며
앵커인지 기상캐스터인지가 멘트를 하고
잠이 덜 깨 눈도 뜨지 못한 나는 발밑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 배 밑으로 발들을 쑤셔 넣다가 할큄을 당해 눈을 뜬다.
아... 그제야
밤새, 새벽 내내 공포스럽게 들리던 물소리가
동파방지를 위해 틀어놓은 수돗물 소리란 걸 인지하고
애먼 고양이에게 아침부터 잔소리를 하며 욕실로 간다.
밤새 욕조 안에 고여진 물이
내가 본 탐욕의 때가 없이 너무나 맑고 투명해
잠시 실망 아닌 실망을 한 번 한 후에
깨작깨작 고양이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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