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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426

(詩) 제 명(命)대로 살기 - 제 명(命)대로 살기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에는 연한 안개처럼 거미줄이 핀다. 시들지 않는 안개꽃처럼 질기디질긴 실타래 같은 거미줄이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을 잠식해 간다. 하지만 나와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공간을 잠식하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새벽 천장에서 내 콧등까지 내왔다가 내 눈 깜빡임에 놀라 부리나케 올라가도 잠자는 고양이 앞발을 타고 올라가도 우리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저 고양이도 나를 닮아 게으른 걸까? 아니면 내가 저 고양이를 닮아 온순한 걸까? 그렇게 우리는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만의 공간을 잠식해 가는 거미에게 한없이 방대하다. 겨울이면 거미들은 모두 말라 죽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천장과 벽 구석 틈틈이 또 남아 있겠지. 7월의 어느 날 새벽인 지금도.. 2022. 7. 26.
(詩) 기억의 회전법 - 기억의 회전법 살아가면서 돌고 도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돌고 돌면서 잊었다가 찾고 찾았다가 잃는 것도 시간만이 아니다. 기억 한 생(生)에 있어 목숨 내려놓을 때까지는 짊어지고 갈 무거운 짐 덩어리이지만 그 짐 덩어리도 가끔은 툭툭 조각으로 튕겨 나갔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 다시 내 머릿속에 박힐 때가 있다. 살면서 수없이 쌓여가는 기억들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살고 싶지만 백지장보다 얇은 내 기억력에 내 안에 기억들은 수시로 튕겨 나갔다가 다시 나를 찾아와 박히며 그렇게 그렇게 나를 존재케 한다. 살아가면서 돌고 도는 것은 돌고 돌면서 잊었다가 찾고 찾았다가 잃는 것은 시간만이 아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들의 기억들도 그런 회전법으로 우릴 존재케 한다. 단지, 다시 박히지 않을 기억들이 적어주길 .. 2022. 7. 20.
(詩) 비수(匕首) 장맛비 - 비수(匕首) 장맛비 내리는 비는 거슬러 오를 수 없다. 중력에 의해 위에서 아래로 내리고 바람에 의해 옆으로 내리고 그렇게 종일 내리는 비는 내 발밑에 고일 뿐 다시 하늘로 거슬러 오를 수 없다.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 년에 반 절기 비 내리는 계절이 시작됐다. 살면서 수많은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중 내리는 저 비와 내가 너에게 쏟아낸 비수 같던 말들은 해(年)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겠지.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기억을 되살리겠지. 차리라 장맛비는 그치고 마르면 다시 일 년을 버틸 수 있지만 내뱉은 나의 말들은 수시로 떠올라 나와 너를 아프게 할 수 있으니 지독한 장마보다 아프다. 거스를 수 없다는 단순한 차원이 아닌 고질병으로 고착된 내가 만든 악(惡)이다. 거슬러 오를 수는 장맛비가 내리기 시.. 2022. 7. 7.
(詩) 4월의 비 - 4월의 비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잊으려 할 필요는 없지. 그 기억이 좋던, 싫던 이젠 현실이 아닌 과거일 테니 떠오르는 기억을 애써 잊으려 할 필요는 없지. 혹시라도 누가 아는가? 그 기억에 잊혔던 내 꿈이 다시 피어날지. 4월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온 봄비 그 비에 흠뻑 젖은 내 꿈이 피어날지. ..... 2022. 4. 1.
(詩) 고양이 연가 #01 - 고양이 연가 #01 나에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지. 온몸은 하얗고 머리와 꼬리만 검은색 고양이.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었을까? 8년 동안 나의 넋을 모두 빼놓고 시름 한 지 사흘 만에 화려하지도 않은 무지개다리를 훌쩍 건너간 야속한 나의 고양이. 떠나고 생각하니 그런 고양이는 없었다. 순하고 순한 외모와 속 깊었던 고양이 오랜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이 아팠을까? 하지만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고 내 무릎 위를 좋아하던 고양이 따뜻한 솜뭉치 같았던 나의 고양이 생각할수록 아파 잊고 지내야 할 고양이. 나에겐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지. 온몸은 하얗고 머리와 꼬리만 까맣던 고양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얼굴로 나에게만 안기던 속 깊고 따뜻한 솜뭉치 같던 “까옹”이라는 천사 고양이. 더 많은 것을 .. 2021. 11. 8.
(詩) 터럭만큼의 행복 주는 삶의 끈 - 터럭만큼의 행복 주는 삶의 끈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스럽던 일들과 행복했었던 일들은 더욱 잊기 힘들다. 살면서 수많은 일을 겪고 다시 수많은 기억을 잊고 살지만 고통과 행복에 대한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잊히지 않는 수많은 기억으로 인해 또다시 삶이 어지러워도 그 속에서 행복했던 기억이 툭툭 불거져 어지럼증은 가라앉고 다시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거친 바람에도 꿈쩍 않고 버티는 고통스럽던 기억들 그 안에 보물처럼 숨겨진 깊고 깊은 붉은 웅덩이 속에 숨겨진 그대가 만들어준 따뜻하고 행복한 작은 기억들로 내가 순간, 순간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유처럼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고통스럽던 일들과 행복했었던 일들은 더욱 잊기 힘들다. 터럭만.. 2021. 10. 29.
(詩) 가을을 훔쳐 간 귀뚜리 - 가을을 훔쳐 간 귀뚜리 몇 해 전부터일까? 가을이 와도 귀뚜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여름이 길어진 탓일까? 흔히 말하는 이상 기후 탓일까. 밤부터 새벽까지 발코니 어느 시멘트 틈에서 겨울을 부르던 귀뚜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로 인해 더욱 적막해진 가을밤 철모르는 나이 든 고양이 한 마리와 데면데면 눈 맞춤 하다가 서로 등 돌리고 잠을 청해 보다가 손톱만 한 생명체의 부재에 가을을 통째로 잃은 듯하여 억울하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하고 몇 해 전부터일까? 밤부터 새벽까지 발코니 시멘트 틈에서 겨울을 부르던 귀뚜리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 손톱만 한 생명체는 나와 내 고양이에게서 가을을 훔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 2021. 10. 27.
(詩) 가을 빗소리 - 가을 빗소리 언제부터인가 가을비 내리는 소리를 잊게 됐다. 그전까지 가을비 내리는 소리가 다른 계절 빗소리와 차이가 났으나 언제부터인가 내가 기억하던 가을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계절마다 빗소리에는 그 계절에 맞는 온도와 비 내음이 배어 있지만 내 기억 속의 가을 빗소리에는 유독 특유한 소리와 비 내음이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기억하던 가을 빗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을의 부재일까? 내 기억의 상실일까? 그런데 잊힌 그 가을 빗소리는 내게 좋은 소리였을까? 나쁜 소리였을까? 좋은 소리였다면 꿈에서라도 듣고 싶겠지만 나쁜 소리였다면 어쩌면 잊히길 잘된 게 아닐까. 늦여름 지나자마자 찾아온 늦가을 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잊힌 내 가을 빗소리를 애써 기억해보려다가 문득 나쁜 기억의 소리로 쏟아져 내릴까.. 2021. 10. 25.
(詩) 그립다가도 - 그립다가도 그립다가도 사그라들고 사그라들었다가도 그리워지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쩔 수 없는 사랑이지. 보면 볼수록 좋은 그래서 더 만나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진정한 사랑은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세월이 흘러 눈처럼 쌓였을 때 스멀거리며 피어나는 정(情)일지도 몰라. 보면 볼수록 보고픈 사람보다 사그라들었다가도 그리워지는 기억 먼 곳에 숨어 있는 그 사람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몰라. ..... 2021. 10. 21.
(詩) 가을 간이역 - 가을 간이역 가을이 좋은 이유는 짙고 파란 하늘이 있어서이고 그 하늘 창백해지며 내리는 조용한 비 때문이다. 가을은 쓸쓸함이 묻어 있어 좋고 한여름 타오르는 사랑보다 새초롬한 사랑을 닮아 좋은 계절이다. 길지 않은 가을 뜨겁지 않게,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게 소소한 사랑과 잔정을 쌓아 겨울 마중 하기 좋은 계절이다. 가을은 긴 겨울 마중하는 간이역 같은 계절이다. ... 2021. 10. 19.
(詩) 제자리 - 제자리 여름에서 겨울로 잠시 건너뛴 계절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얼었다 녹아 빛바랜 가을은 누추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겠지. 그것이 거스르지 못할 자연 이치이니까.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평탄한 삶의 길을 가다가 잠시 그 길을 이탈하는 바보짓도 해보고 아차 싶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머쓱한 삶을 살지 않는가? 가끔 아픈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사람은 변할 수 없고 변해서도 안 되지만 진정 변해야 할 때는 독하리만큼 다짐을 하고 변해야지 훗날 후회도 상처도 남지 않겠지. 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은 제자리로 돌아갈 때가 제일 아름다운 것일지도 몰라. 그 자리가 비록 지금의 자리보다 못한 자리일지라도 그곳에 있을 때가 행복하다면. 여름에서 겨울로 잠시 건너뛴 계절이 머쓱한 모습으로 제.. 2021. 10. 18.
(詩) 잊힘의 숨바꼭질 - 잊힘의 숨바꼭질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간절한 마음으로 찾길 바란다면 슬프고 아프기보다는 그래도 즐거운 일이다. 무언가를 잊는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내가 그것을 잊던, 그것이 나를 잊던 무언가를 잊거나 잊힌다는 것은 그래서 외로운 일이다. 가을바람 스산해지는 지난여름 강변에 서면 내가 찾아야 할 것들과 잊어야 할 것들이 하나로 뭉쳐 탁해져 가는 머릿속을 더 어지럽히고 그 어지럼증에 나는 가을 앓이를 할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늘어나는 나이만큼이나 세월의 흐름도 빨라져 머지않아 나를 지배할 것이다. 그땐, 내가 찾아야 할 것들보다는 내가 잊고, 내가 잊히는 것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날이 .. 2021. 10. 14.
(詩) 마중과 배웅의 차이 - 마중과 배웅의 차이 같은 자리에서 그대를 바라봅니다. 바람, 나의 설렘만큼이나 들뜨고 간지럽게 불어오는 자리에서 그대, 환한 미소 지으며 내게 다가오는 그 행복한 시간 마중이란 단어로 기억합니다. 같은 자리에서 그대를 바라봅니다. 바람, 나의 아쉬움만큼이나 차갑고 아프게 불어오는 자리에서 그대, 슬픈 미소 지으며 내게서 떠나가던 그 야속한 시간 배웅이란 단어로 기억합니다. 한때, 푸른 소나무처럼 같은 이 자리에 서서 그대를 마중하고 배웅했지만 이제는 시든 고목이 되어 서걱거리며 오가는 마른 바람만 마중하고 배웅합니다. 마중과 배웅의 차이는 무(無)가 되었습니다. ..... 2021. 9. 12.
(詩) 추억 날리기 좋은 계절 - 추억 날리기 좋은 계절 굽이굽이 돌아가야 하는 초행길을 마음의 준비도 없이 가겠다는 건 지금껏 살아온 삶의 흔적에 또 한 번의 상처를 내는 일인지도 몰라. 빨리 가고 싶다 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곳으로 훌쩍 가버리고 싶다 해도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짙어지는 생각 하나 사람은 어디론가 떠날 때는 머물렀던 자리와 그 자리에 벗어 놓은 내 허물들은 깨끗이 치우고 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인지도 몰라. 내가 머물렀던 자리 언젠가 나보다 더 날 좋아해 줬던 이들과의 추억 이는 바람에 훌훌 날려 버리고 마치 누구도 머물지 않았던 곳처럼 말끔히 치워 놓고 떠나는 것이 그들을 위한 나의 마지막 선물인지도 몰라. 3월, 추억 날리기 좋은 계절에··· If We Make It Through December / Pho.. 2021. 3. 16.
(詩) 그리워하기 좋은 계절 - 그리워하기 좋은 계절 참 그리운 얼굴이야. 여름 지고 가을 찾아드는 강가 비릿한 바람 향기 닮은 우거진 수초(水草) 시들어가며 내뿜는 향기 어두워질수록 울컥울컥 눈물 퍼 올리게 하는 얼굴 참 그리운 얼굴이야. 가을, 짧아서 네 얼굴 그리워하기 좋은 계절이야. 그리움도 길어지면 시든 낙엽처럼 퇴색돼 버리니 짧지만 가슴저리도록 그리월할 수 있는 이 가을이 그리워하기 좋은 계절이야. ... ( Fur die liebe / Berge ) 2020. 9. 24.
(詩) 순간과 시간 쪼가리 - 순간과 시간 쪼가리 어느 순간을 잊지 못하고 평생 안고 산다는 것은 기쁨이거나 슬픔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내가 너를 기억하듯 네가 나를 기억하듯 서로의 순간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지금껏 잊지 못하고 살고 있니 너와 나의 그때 순간은 기뻤거나 슬펐을 것이다. 그래도 모든 순간을 잊고 사는 것보단 아름답지 않은가? 슬픔이나 미움도 시간이 흐르고 나면 세월에 승화되어 무뎌짐에서 추억으로 남게 되니 애써 잊을 필요가 없다. 잊고 싶다고 잊히면 그것은 기쁨이나 슬픔의 순간이었다기보다는 일상 중의 하찮았던 시간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 ( Make the moment last / Tom Odell ) 2020. 9. 23.
(詩) 그리움 잊기 그리움 잊기 그리움은 그리움으로 잊혀질 때가 있다. 손으로 쓰던 편지도 사라지고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안부와 그리움을 전하던 시절마저 바람보다 빠르게 모습을 감추고 세월은 수십 초 안에 안부와 그리움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게 됐지만 나에게 그리움은 그리움으로만 잊혀질 때가 있다. 그리고 그 횟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잦아지고 잦아진 그리움의 부스러기들은 언젠가부터 손이 안 가 수북이 먼지 쌓인 책들 위로 먼지와 함께 쌓이고 있다. 너무 긴 세월을 들추진 않은 죄다. 종이 냄새 맡아 가며 밤새 읽던 책들 그날의 열정으로 나는 너를 그리워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하고 모든 것을 게을리한 나의 나태함에 받는 천벌天罰이다. 그래도 때로는 그리움은 그리움으로만 잊힐 수 있어서 행복한 일인지도 모른다. 잊히지 않고 커져만.. 2020. 9. 21.
(詩) 고양이 눈을 보며 - 고양이 눈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늘 나를 바라보던 고양이 나는 오늘에서야 네 얼굴이 아닌 눈을 보았지. 마치 소우주를 담고 있는 듯한 신비로운 너의 눈을. 너는 그 소우주를 지키기 위해 아무 표정이 없었구나. 오랜 세월 동거하던 내게도 감쪽같이 숨기고 살았구나. 2020. 9. 18.
(詩) 생각 부러뜨리기 - 생각 부러뜨리기 바르고 그른 것이 하나의 시선과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면 지금의 현실에서 벗어나질 못할 거야. 때로는 나의 시선과 생각 그리고 너의 시선과 생각 모두 부러뜨리고 밑바닥부터 머리 맞댄 채 바르고 그른 것에 대한 서로의 시선과 생각을 공유할 때 우리가 얻고자하는 진정한 바르고 그른 것의 정의가 내려지겠지. ..... ( Us / James Bay ) 2020. 8. 31.
(詩) 푸른 달맞이꽃 푸른 달맞이꽃 달맞이꽃이 피는 계절에는 유난히 밤이 밝다. 둥글게 뜬 달로 인해 밝고 강물 위로 뜬 달빛에 밝고 옹기종기 핀 노란 달맞이꽃들로 인해 밤이 밝다. 지난봄, 훌쩍 내 곁을 떠나간 밤하늘 어느 별보다 맑고 예뻤던 내 고양이의 푸른 두 눈이 밤마다 내 마음에 비치니 올 달맞이꽃 피는 계절에는 그 어느 해보다 푸르고 아픈 시간을 보내겠구나. ..... (오래된 우리의 얘기 / 조덕배) 2020. 6. 4.
(詩) 자문자답 - 자문자답(自問自答) 눈을 감으면 더욱 또렷이 보이는 것들 숱하게 잘못했던 나의 행동들 이것을 깨닫고 있으니 주워 담을 수 없는 후회를 하고 있구나. 진즉에 알았더라면 진즉에 보았더라면 후회하지 않았을까? 새벽이 아침을 잉태하려는 시간 답이 없는 질문을 스스로 나에게 던지고 불면(不眠)을 자처하고 있다. 후회란 뒤늦게 깨우치는 것을 의미하건만 어찌 진즉에 알고, 진즉에 보였겠는가? 그러길 바란다는 것은 후회조차 회피하려는 비겁하고 나쁜 자위(自衛)인 것을. ----------------------------------------- - 내일로 가요 / 조하문 2020. 5. 5.
(詩) 회전목마 탄 방랑자 - 회전목마 탄 방랑자 언제고 떠날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변해갈수록 사람들 마음도 조급해져 어느 한 곳에 머물기 두려워하며 여럿보다는 둘이 둘보다는 혼자가 더 편하다는 생각에 언젠가부터 마주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쉽게 떠날 수 있다는 마음을 갖고 살지만 이미 떠나간 그대를 그리는 나는 그 어느 곳으로도 떠날 수가 없구나. 떠나려고 시늉을 해 봐야 떠나야 할 대상이 이미 나를 떠나고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나는 여기서 떠나간 그대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회전목마 탄 방랑자일 뿐이구나. 2020. 4. 2.
(詩) 바보를 위한 풍경 담기 - 바보를 위한 풍경 담기 겨울바람이 차가울수록 욕심 없던 그대의 손은 더 따뜻해 세월이 흐르고 흘러 그 겨울이 몇 번 지났는지도 모를 지금 그때의 매섭던 추위와 그 추위를 막아준 그대의 따뜻함은 낡은, 종이 위에 쓰인 빛바랜 편지처럼 내 추억 속에 남았다. 숨 막히는 현실 속에서 진실보다는 현실에 급급해 사는 사람들 속에서 순간순간 욕심 없던 그대를 사랑한 그때가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그로 인해 지금껏 각박한 현실에 얽매여 이리 재고 저리 재며 사는 똑똑한 사람이 아닌 바보스럽지만 사람을 믿고 대가 없이 주며 살 수 있는 지금의 내 삶이 행복할 뿐이다. 이젠 내 생에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정말 욕심 없이 사람들을 좋아한 바보 같던 그대 그대를 닮은 나는 그대가 채 못 보고 간 이 별의 아름다운 풍경을 서.. 2020. 3. 13.
(詩) 겨울은 겨울은 겨울은 기다림이 있어 따뜻한 계절이다. 어릴 적 어느 해 겨울방학 눈보라 치던 오일장五日場 못난 자식 먹여 살리겠다고 장터로 나가 온몸 꽁꽁 언 엄마 걱정은 친구네 사랑방에서 구워 먹던 화롯불 군고구마 달콤함에 잊고 두 손 가득 들고 오실 엄마의 보따리들을 떠올리며 친.. 2020. 1. 14.
(詩) 어떤 선물 - 어떤 선물 겨울비 춥지만 따뜻한 비 어느 해 세상에서 제일 따뜻했던 그대 기약 없이 훌쩍 떠난 겨울 나는 그해 내리던 비가 얼음물보다 더 차갑고 아팠다. 세월 바람 타고 휘휘 돌다가 얼마나 흘러버렸는지조차 모를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해 겨울비가 내 평생 맞은 겨울비 중 가장.. 2020. 1. 8.
(詩) 침묵의 소리 - 침묵의 소리 깨어 있는 동안 들리는 소리 일분일초의 쉼도 없이 들리는 소리 거를 것은 거르고, 들을 것은 듣고 종일의 피로 그 피로 반半 이상의 원인이 소리 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잠을 잔다. 눈目의 피로도 풀 겸 잠을 잔다. 하지만 꿈속에서도 만물萬物은 어지럽게 돌고 현실에서의 .. 2020. 1. 2.
(詩) 어떤 깨달음 - 어떤 깨달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흐르는 시간과 계절은 별개인 것 같더니 어느 해부터는 시간과 계절은 빛과 그림자 같더라. 시간과 계절 좋고 나쁜 시간에 따라 계절의 변화 시기가 잠시 늘고 줄 뿐 떼어 놓을 수 없는 애증의 관계 같더라. 살아갈 날보다 정리해야 할 날이 가까워질수.. 2020. 1. 1.
(詩) 보상 받지 못할 억울함 - 보상받지 못할 억울함 일 년을 쉬지 않고 움직여야 현재를 유지하는 것처럼 한 계절도 쉬지 않고 이 별을 휘휘 돌아야 일 년 전, 이 계절, 이 자리를 만들 수 있으니 계절이나 사람이나 쉴 틈이 없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같은 일 년씩을 움직였어도 세월이 흐르고 남긴 잔해들은 고스란.. 2019. 10. 15.
(詩) 여름이 해주는 충고 - 여름이 해주는 충고 언젠가부터인지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냥 그렇게 흐지부지 흐르고 있었다. 무엇하나 특별할 것도 그렇다고 애써 외면할 것도 없이 시간이 흐르는 대로, 그 순간을 버티는 대로 그저 그러한 시간들로 지낸 것 같다. 다시 말하면 "뭐 다운 뭐!" 즉, ~답지 않게...지냈다.. 2019. 8. 3.
(詩) 여름바람에 분실했던 깨달음 - 여름바람에 분실했던 깨달음 이른 아침 햇살만큼이나 맑은 얼굴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그날의 반半은 행복일지도 몰라. 아침에 눈을 떠 내 옆에 있는 사람이던 출근길 우연히 마주친 사람이던 햇살만큼이나 맑은 얼굴이면 그 얼굴 마주한 것만으로도 그날의 반半은 행복일지도 몰라. 하.. 2019. 7.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