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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할머니가 주신 생일 선물..라면 세 봉지

by 푸른비(박준규) 2005. 12. 6.

몇 년을 홀로 생일을 맞다 올해는 용기 내어 내가 먼저 사람을 찾아 나섰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나 찾아나서는 것도 실례. 몇 달 전부터 찾아뵙는 독거노인 할머니 댁에 방문하기로 마음 먹고, 오후 쯤 작은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 할머니 댁으로 나섰다.

이 할머님은 언어장애가 있어 버벅대는 내 말을 너무 잘 알아들어, 친구처럼 찾아가 뵐 수 있는 아주 편안한 분이다. 이 할머니는 이가 거의 없어 음식을 제대로 씹지 못해 부드러운 것만 드셔야 한다. 그동안 할머니께 맛있는 음식 하나 대접하지 못했는데, 할머니 지인에게서 케이크는 드신다는 정보를 입수한 것. 평소 케이크를 좋아하지만 혼자 먹기 뻘쭘해서 차일피일 미루다 거의 반 년 만에 내 생일을 맞아 자축하는 의미로 사서, 가볍게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

평소와는 달리 집이 조용하다. 출입문도 방문도 모두 닫히고 집안에 적막이 흘러 혹시 외출하셨나 싶어 "할머니~~"를 두어 번 불러보니, 방안에서 "들어와요~"라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안심,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좀 전에 연탄불을 갈아 넣으시고 피곤해 누워 계신 중이라 하신다.

내 손에 들려있는 케이크를 보시며 "뭘, 그리 사와요~"라고 걱정 어린 질문을 하시는 할머니. 연세는 80세가 넘으셨는데도 손자 같은 내게 존칭을 섞어 쓰신다.

푸른비: "할머니, 케이크 드시나?"
할머니: "케이크? 그건 생일날이나 먹는 건데?"
푸른비: "(일단 겉옷부터 벗어놓으며) 케이크 드시지?"
할머니: "어, 먹기야 먹지. 그래도 생일날 먹는 건데?"
푸른비: "오늘 제 생일이야!!~"
할머니: "(놀라시며) 생일이야?? 다른 사람들 모르는구나?(봉사카페회원들을 말씀하시는 것)"
푸른비: "네. 할머니랑 둘이 먹으려고 사왔지~"
할머니: "이그 그래도 케이크는 비싼데…(걱정하시며)"


케이크 포장 뜯어 상자에 올려놓고 칼로 자르려 하는데,

할머니: "촛불 켜고 축하해야지?"
푸른비: "(멋적게 웃으며) 그냥 드셔! 축하는 무슨 축하야."
할머니: "(할머니도 웃으시며) 그냥 먹어?"
(내가 내 생일을 자축하는 것이라 차마 촛불까지 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일단 먹기 좋게 잘라 할머니 전용 밥그릇에 한 조각 담아 드리고 나는 통째로 앞에 놓고 포크로 맛있게도 냠냠. 할머니는 이가 없으신 관계로 어떤 음식이던 조심하시는 분이시다. 그걸 아는 터라 옆에서 계속 나는 "할머니? 이 빵은 부드러워서 안 씹어 드셔도 소화 잘돼"라고 안심을 시켜드린다. 할머니는 그래도 "응, 그래 어여 많이 먹어"라며 오히려 날 걱정해 주신다.

그렇게 케이크 하나 놓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혹시나 바다에 한 번 모시고 갈까 싶어, 바다 좋아하시면 한 번 모시고 가겠다 했더니 반색을 하시며 "싫다" 하신다. 예전에 겨울 바다에 가셨다가 너무 추웠던 기억이 있으시다며.

그럼 다른 곳 가고 싶으신데 있으신지 여쭈니 집이 제일 좋으시다면서 밝게 웃으신다. 또한 오늘은 할머니랑 처음으로 사진도 찍어 봤다. 티브이 몇 번 나오셔서 그런지 카메라 의식 같은 건 전혀 없으시고, 오히려 찰영을 즐기시는 듯한 여유를 보여 주시는 센스를 갖고 계신 분!
 

 ▲ 자연스러운 할머니 포즈~ 아프지 마시고 오래 사세요~ ..051205

 

1시간 반 정도를 그렇게 할머니와 따뜻한 방에 앉아 수다를 떨고 집을 나서려는데 할머니가 부엌에서 주섬주섬 무언가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신다. 할머니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라면 네 봉지. 그 중 세 봉지 싸주시며 말씀 하신다.

할머니: "이거 가져가 자기 전에 끓여 먹구 자."
푸른비: "집에 라면 많아. 할머니 놓고 드셔."
할머니: "오늘 생일이라 내가 끓여줘야 하는데 케이크 금방 먹어 배부르니, 가져가 먹어. 생일날 국수 먹어야 오래 사는 거야. 꼭 끓여 먹구 자."
푸른비: "그럼, 제가 1개만 가져갈게. 놓고 드셔!"
할머니: "아냐, 저기 또 많아!! 어여 가져가 먹어."

이렇듯 할머니는 무얼 못 챙겨 주셔서 안달하시는 정 많은 분이시다. 기어코 또 무얼 얻어 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중 오늘은 내 생일 중 아주 소중한 할머니의 선물(라면 3개)을 받은 날이 되었다. 할머니께 추우니 나오지 말라 하고 빠르지도 않은 내 절은 걸음으로 나와 차를 타고 출발하는데, 어느새 그 굽은 허리로 지팡이 집고 골목까지 나와 배웅해 주신다. 그렇게라도 하셔야 마음이 편하신 할머니. 내 차가 보이지 않을 동안 골목 어귀에 지팡이 집고 서서 바라봐 주시는 정이 많으신 우리 할머니. 오늘 내 생일은 아마 오랜 세월 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역시 외로움은 나누면 반이 되는 법. 애써 외로움을 안고 살 필요가 없다. 차라리 내가 먼저 마음 열고 무언가를 찾아 나서면 외로움은 반이 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더라도 찾아 나설 용기와 그 과정만으로도 이미 외로움의 반은 덜어내졌을 것임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낀 하루였다.

200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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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오마이뉴스에도 송고된 기사입니다. 오해 없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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