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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16강 진출, 그 화려함 속에 잊히는 사람들

by 푸른비(박준규) 2006. 6. 14.

부제: 한 좌판상인과 인터뷰하다


2006년 06월 13일 한국과 토고가 한판 대결을 벌이는 날, 가평공설운동장에서 있을 거리응원전 준비를 위해 한창 작업 중인 한 공연설치 팀을 찾았습니다. 이날 경기는 밤 10시에 열리나 낮 4시 경부터 설치 팀원들은 분주히 무대를 설치하고 각종 음향시스템 테스트와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는 등 초여름 날씨보다 더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며 맡은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수년 떠돌아다니다 이곳까지 왔네요.


그들 옆에서 열심히 사진도 찍고 취재를 하다가 잠시 자동차로 돌아와 휴식을 취할 무렵 처음 뵙는 어르신 한 분이 다가와 몇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곳(가평공설운동장)에 몇 명이나 응원 나올까요?” 또는 “이 지역 인구수는 얼마나 되요?” 와 같은 질문.


짐작을 해보니 타 지역에서 어떤 물건을 팔러 나오신 분 같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저도 몇 가지 질문을 드려봤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라던가 “다른 지역도 가 보셨어요?” 와 같은 질문 말이지요. 이렇게 하다 잠시 인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날 만나게 된 분은 서울에 사신다는 장(52·남)모씨. 장씨는 수년째 이것저것 물건을 떼어다 파는 한 좌판상인 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 행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간다는 장씨. 아래는 잠시 나눈 대화내용입니다.


- 이곳까지 물건 팔러 오신 거예요?

“그럼요. 수도권 어디든 찾아다니지요. 사람들만 모이면 말입니다. 수년 그렇게 떠돌다 이곳까지 왔네요.”


- 서울에도 (사람들모이는곳)많지 않나요?

“왜요? 엄청 많죠. 근데 물건 파는 사람들도 많아서 벌이가 쉽지만은 않지요.”


- 주로 어떤 물건들을 파시는 데요?

“대중없어요.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물건을 떼다 팔지요. 오늘은 붉은악마 머리띠와 응원도굽니다. 아, 근데 사람들이 많이 와야할텐데 걱정이네요. 춘천으로 가야하는건지 원.....”


라고 하며 장씨는 이날 운동장에 모일 사람들이 적으면 어쩌나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이렇게 전국으로 다니며 장사를 하시면 잘 되냐는 질문에 장씨는 다음과 같이 대답을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냥저냥 했는데 (지방)자치제가 되면서 더 어려워졌어요.”

- 왜요? 자치제하고 이런 장사하고 관계가 있나요?

“그럼요. 특히 먹거리 같은 건 더 심하죠. 자치내의 상인들에게 기회를 더 주는 것 때문이죠. 다른 지역에서 와 좌판을 벌이면 바로 단속 나와 다른 데로 가라고 하니까요. 나야 먹는 장사가 아닌데도 그런 단속 많이 받고 있어요. 해서 자치제 하기 전이 이런 장사하기엔 좀 더 나았다는 겁니다.”


라고 현재 전국을 다니며 장사하는데 애로점을 토로했습니다.


이날도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막 트럭에서 손수레에 물건을 부리려 하는데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더니 바로 다른 곳으로 가서 하라고 단속을 했습니다. 그곳은 사람들이 응원하는 곳에서 좀 떨어진 곳이어서 장사하기에는 적합했던 곳이었는데 말이지요. 이에 장씨는 늘 겪던 상황인 듯 씁쓸한 웃음을 짓고 바로 물건을 접었습니다.

 

▲[단속요원 피해 운동장 후미진 곳에서 물건을 부리는 모습]


그 후 장씨는 운동장 후미진 곳에 차를 대고 작은 손수레에 다시 물건들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이 모이는 곳으로 가서 팔겠다는 뜻이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부려 나간 곳에서도 쫓겨난 장씨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부터 한참 먼 거리로 가서 장사를 해야만 했습니다.


나이 쉰둘에 희끗희끗한 머리, 삐쩍 마른 체구에 허름한 옷과 신을 신은 장씨는 월드컵응원 취재를 나간 저를 한없이 가슴 아프게 했습니다. 하루 일당 3만원도 안 나올 때가 허다해 자동차 경유 값도 대기 어려움이 있다는 장씨. 이날 단속요원을 피해 운동장 후비진 곳에 차를 대고 작은 손수레에 물건을 주섬주섬 부리던 모습 때문에 길거리 응원 취재할 기분마저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안으로 빠져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들


가라앉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는 어떤 사고·사건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떠올려 봤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2002년 6월 13일에 발생한 고(古)효순, 미선 사건. 이 사건은 도로 갓길을 가던 이 두 명의 여중생들을 미군 장갑차가 덮쳐 무참히 희생시킨 건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월드컵의 영향으로 각 방송매체는 그리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고 흘려 방송하기에 급급했었습니다. 해서 이 사건은 흐지부지 넘어 갔고 월드컵이 끝난 7월이 돼서야 국민들은 관심을 갖고 촛불집회를 비롯하여 미군 측의 사과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잠깐 가진 그 사건을 4년이 지난 지금 에 와서 떠올리는 사람들을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며 그 사건을 들먹이면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마저 생긴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또한 얼마 안 있어 일명 ‘서해대전’이란 사건이 발생한지 4주년이 됩니다만 이 사건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떠올리며 먼저 간 그들을 애도할 것인지도 궁금할 따름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사건·사고가 2002년 6월에 발생하였으나 4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2002년의 영광 4강을 외치는 함성 밖에는 들리지 않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재의 추세에 강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일이나 적어도 그 밖의 사건·사고들도 한번 쯤 되짚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언론·매체들의 역할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루 일당 몇 만원에 수 백리 길을 떠나온 한 가장의 무거운 어깨와 월드컵이란 화려한 행사에 파묻혀 가는 고귀했던 생명들의 영혼이 16강 진출, 그 화려함 속에서 또 우리의 눈과 마음 안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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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 되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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