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폭우를 헤치고 독거할머님 댁으로

by 푸른비(박준규) 2006. 7. 28.

부제: 가는 길은 험했으나 행복했던 시간들


유난히도 비가 많은 올여름. 얼마 전 내린 장맛비와 태풍의 영향으로 전국에 막대한 피해가 있었는데 장마의 막바지를 알리는 비가 또 거세게 내렸습니다. 7월 27일 이 세찬 비를 헤치며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뵙는 독거할머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비는 쉬지 않고 쏟아 붇는데 자동차 와이퍼를 가장 빠르게 해도 금방 빗물이 번져 시야가 가릴 정도였습니다.

▲[비내리는 46번 경춘국도]

 

▲[비가 너무 내려 앞이 안 보인다. 춘천시내 ]


찾아뵙는 독거할머님은 1년 전 인터넷 봉사모임을 통해 알게 된 강원도 춘천시 동면 장학리에 사시는 할머님이신데 그동안 정이 들어 이젠 친할머니 같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이 할머님 같은 경우 아들·딸 한 분 씩 계시나 모두 형편이 어려워 뿔뿔이 흩어져 사는 터에 어쩔 수 없이 독거 생활을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연세는 82세로 고령이시며 허리는 완전 굽어 있어서 일상생활마저 하기 힘든 분이시지요. 다행히 봉사 카페 회원들이 수시로 찾아뵈며 안부인사도 드리고 일부 회원님들은 국거리나 반찬거리를 조금씩 만들어다 주시고 계셔서 그나마 할머님이 생활을 하고 계십니다.


처음 할머님을 찾아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토요일마다 회원들과 어우러져 같이 찾아뵙고 왔으나 생각해 보니 그러면 일주일에 찾아오는 사람(회원)들이 한 번 밖에 기회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그 후부터 저는 평일에 한 번 찾아뵙기로 마음먹고 매주 목요일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토요일은 다른 회원님들이 찾아뵙고 말이지요, 이런 식으로 카페에서는 3군데 독거노인 댁을 정하여 번갈아 가며 찾아가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이 각박한 세상에 참 고마운 사람들의 모임이라 저 자신도 생각이 들 만큼 모두 열심히들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솔직히 할머님 댁에 가서 할 일이 없습니다. 마음 같아선 음식도 해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고 오면 좋은데 저도 제 몸 가누기 벅찬 장애인이다 보니 막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더군요. 단지 한 두 시간 할머니랑 앉아 수다 떨고 오는 게 고작이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가 언어장애 까지 있어 대화가 어려우나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 할머님은 제 말을 잘 알아들으시고 말씀도 혼자 술술 잘 하셔서 매번 마음 편히 찾아뵙고 얘기 나누고 올 수 있어 좋습니다. 해서 바쁜 일이 있더라도 목요일 오후는 시간을 꼭 빼놓으려고 잔머리? 까지 쓰고 있을 정도이니까요.


이날도 어김없이 춘천에 한 하나로 마트에 들러 할머니 간식거리를 샀습니다. 이가 없으셔서 간식메뉴는 늘 정해져 있습니다. 죽, 부드러운 빵, 요쿠르트, 요플레 등등. 더 맛난 것을 사다 드리고 싶지만 씹지도 못하시고 소화도 못 시키셔서 메뉴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지요. 할머님 댁은 아무리 일찍 가도 오후 3시가 넘습니다. 저도 일을 마치고 가야하므로 점심도 못 먹고 가는 경우가 많아 요즘은 아예 마트에서 김밥을 같이 사 가서 할머님 죽 드실 때 같이 먹고 오곤 합니다. 이날도 김밥을 먹다보니 갑자기 사진이 찍고 싶어 찍었는데 이미 김밥은 거의 다 먹은 터라 사진 이미지가 좀 좋질 않네요. 그리고 제가 실수를 한 것이 그동안 부드러운 종류의 빵을 사다가 이날은 갑자기 새로운 빵이 눈에 띠기에 맛있어 보여 샀는데 우리 할머님 왈 “이 빵은 가져다 집에서 먹어라” 하시며 웃으시더군요. 그때서야 “아, 할머니 이가 없으시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실수 했지요.

▲[간식거리. 할머님께는 팥죽 한 공기가 두 끼 식사다. ㅠ]

 

위 사진에 보이는 초라한? 간식을 앞에 놓고도 할머니와 저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디카의 안 좋은 화질과 조금은 지저분한 배경 때문에 간식들이 더 죽어 보일지는 모르나 그 간식들은 저희에겐 그 어떤 만찬보다 근사한 먹을거리였습니다. 장난기(?) 많으신 할머님은 간식 싸진 찍는다 하니까 저 옆에 있던 요쿠르트 까지 끌어와 빵 옆에 놓으시며 같이 찍으라 하십니다. 참 재밌고 좋으신 할머님이시지요. 밑에 사진에 보이는 박스들은 그동안 할머니가 농사지으신 감자들입니다. 신세 진 분들게 드릴 거라며 정성스레 상장에 담아 마루에 가지런히 놓으셨네요. 저도 두 번 주셔서 가져왔지요.

▲[지인들께 줄 감자 선물셋트]


그렇게 두 시간 정도 할머님이랑 데이트 하고 무거운 발길 돌려 돌아왔습니다. 최근 들어 병원에서 치매 초기진단을 받으시고 약을 복용중이신데 혼자 계시게 하고 돌아오려니 정말 발이 안 떨어지더군요. 앞으로 시간을 더 쪼개서라도 자주 찾아 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할머님의 고무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