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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천사가 제 이름을 도용했어요.

by 푸른비(박준규) 2006. 8. 4.

부제: 이름 도용당했지만 행복해요.


장마가 끝나고 더위로 지쳐 있던 지난 수요일(08/02) 오후, 한 택배 아저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푸른비 휴대폰 벨소리)

- 네~? (푸른비는 여보세요 안 합니다. ^^)

“ 택밴데요. 조00 씨인가요?”

- 아닌데요.

“ 조00 씨 아니세요?

- 네.

“ 전화번호가 018-350-0000 맞으세요?

- 네.

“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 네. 수고하세요.


처음 듣는 이름을 대며 맞느냐는 택배 아저씨 전화에 좀 이상하다 싶었지만 하던 일을 계속 하던 중 이번에는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화가 오더군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푸른비 휴대폰 벨소리)

- 네.

“ 박준규 씨 핸드폰인가요?”

- 네. 그런데요.

“ 여기 택배회사인데요. 조00 씨에게로 물건 보내신 분 아닌가요? ”

- 아닌데요?

“ 장학리 조00 씨에게 박준규 씨가 보낸 사람으로 나와 있는데요?

- 그래요? 저 아닌데, 그리고 장학리면 제가 아는 분은 조00 씨가 아니고 조0X 씨인데요?

“ 그럼 이름이 잘못 된 것 같고 박준규 씨가 아는 분이 조0X 씨 맞죠?

- 네, 근데 조0X 씨는 할머니시거든요?

“ 네, 그럼 조0X 할머님 찾아 전해 드리겠습니다.

- 그러세요. 수고하세요.


+ 조0X 씨 : 춘천에서 혼자 살아가시는 82세 할머님.


전화를 끊고 잠시 혼란이 왔습니다. “분명 나는 할머님께 보낸 적이 없는데 무언가 할머님 댁에 내 이름으로 도착했다?” 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블로그나 인터넷뉴스, 또는 해당 봉사카페에서 후기 등을 읽고 제게 할머님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정보를 물어봐 주신 몇 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그 분들 중 한 분이 할머님께 선물을 보내신 것 같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지요. 생각을 정리하고 할머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 여보세요? 누구세요?

“ 여보세요.  할머니 저에요. 가평총각. (할머님이 이름을 잘 못 외우심^^)

- 응, 잘 내냈어?

“ 네. 잘 지내셨어요? ”

- 응, 나야 잘 지내지.

“ 할머니 혹시 오늘 무슨 물건 하나 간 것 없어요?

- 응, 있어. 근데 박준규가 보냈데..?

“ 뭔지 뜯어 보셨어요?

- 아니, 누가 보낸 건지도 모르는데 왜 뜯니.

“ ㅋㅋ 박준규면 저잖아요!! 그럼 할머니 내일 갈 테니까 같이 뜯어봐요.

- 네가 박준규야?? ㅋㅋ 그래. 그럼 뜯지 말고 내일 같이 뜯어보자.

“ 네 그럼 내일 찾아뵐게요. ^^;


일단 할머님께 전화로 알려 드려 놓고 밤새 누가 무얼 보낸 것일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다 새벽녘 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예상대로 제가 생각하고 있던 몇 분 중 한 분이더군요. 메일 내용은 “카페서 후기를 읽다 할머님께서 겨울 이불을 문 밖으로 내던지셨다는 내용에 마음이 아파 여름 이불세트를 님의 이름을 써서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제 서야 궁금증이 풀렸지요. 이 천사 마음을 가진 님은 저 몰래 제 이름을 사용해 이불세트를 보낸 것이 마음에 걸려 며칠 맘고생 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참고로 이 분의 대화명도 '000천사' 이십니다.


다음 날. 할머님 댁을 찾아가니 여전히 편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어제 약속(?)대로 받은 물건 포장을 안 뜯어 놓고 계시더군요. 해서 겉에 붙은 주소 스티커부터 확인해 보았습니다. 역시 보내는 사람 란에는 제 이름 석자와 휴대폰 번호만 달랑 써 있더군요. 할머님 댁 전화번호도 제 휴대폰 번호로 남겨 놓고. 그러니 택배 아저씨가 제게 전화를 하셨겠지요.

▲ 받는 사람과 보내는 사람의 연락처가 같다.


포장을 뜯어보니 역시 예쁜 이불 위아래와 배게 하나까지 한 세트.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였습니다. 할머님도 즐거워 하셨습니다. 우리 할머님은 복이 참 많으신 분 같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군요. 이 밖에도 수시로 카페 회원들의 순회 방문으로 그나마 외로움을 달래시고 계시니 자주 못 찾아뵙는 저로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 보기만 해도 시원해 보이는 여름 이불세트


할머님과 오늘도 즐겁게 얘기 나누다가 이 이불세트가 어찌해서 오게 된 것인지 설명해 드리고 할머님 댁을 나섰습니다. 이 여름 가기 전에 꼭 덮고 시원하게 주무시라고 당부까지 드리고 말이지요.


이 글로나마 할머님께 소중한 선물 해주신 ..천사님과 수시로 찾아뵙고 도움 주시는 카페 회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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