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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차마 일촌은 못 지우겠더라!

by 푸른비(박준규) 2008. 10. 22.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 저런 일을 했다. 이런 저런 일이라는 것은 글도 쓰고 글도 읽고 가끔 애먼 데 가서 아이쇼핑을 하는 등 나는 컴퓨터 앞에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렇다 보니 메신저 프로그램도 하나 정도는 자주 실행시켜 놓는 편이다. 이 메신저는 요즘 컴퓨터로 작업하는 사람들 또는 학생들에게도 거의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상호간에 말 그대로 메신저 기능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메신저 주소록 부분에는 수많은 지인들의 아이디(대화명)가 등록돼 있고 이들이 접속할 때마다 띠링~띠링~ 알림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인스턴트 이웃?!

 

보통 메신저로 맺은 인연을 한 통신업체의 메신저 상에서는 ‘일촌’이라 칭한다. 그렇다고 메신저 상에 등록된 모든 사람이 일촌이 되진 않지만 편의상 일촌들이라고도 일컫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렇게 등록해 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등록했을 당시에만 잠깐 (메신저 상) 아는 척 했을 뿐 그 이후 로그인(메신저 접속)해 있는 것을 보더라도 딱히 할 말이 없거나 이런저런 핑계로 먼저 아는 척을 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

 

이렇게 쌓인 사람들의 대화명이 늘어날수록 메신저가 켜있는 상태에서는 그들의 접속을 알리는 소리가 잦게 된다. 이 소리를 듣고 그들의 로그인 상태를 보면서 문득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목록을 메신저 상에서 삭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상황이 마치 인스턴트 인연이 된 듯하여 씁쓸한 미소도 짓게 되고, 하지만 내 눈에서라도 그들이 안 보여야 덜 미안하지, 그들이 로그인 했는데 아는 척조차 하지 않는 내 자신에게 이해가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목록을 정리해 버리고 말았다.

 

차마 일촌은 못 지우겠더라

 

하지만 이렇게 내 쪽에서 삭제한 경우 상대는 내 로그인 여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도 나를 삭제했다면 모르겠지만. 또한 내가 상대 목록을 삭제하먼서 내 로그인 상태를 상대가 모르게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면 자칫 그가 오해할 수도 있기 때문에 차마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하고 목록에서만 삭제한 것이다.

 

또한 이들 목록에는 “일촌”이라고 하여 일반 메신저친구들보다 좀 더 서로간의 정보를 볼 수 있게 하는 기능이 있다. 이것을 보통 “일촌 맺는다”라고 표현하는데 서로가 동의하여 일촌을 끊는 것은 별 상관없겠지만 한쪽에서 상대의 목록을 삭제하며 동시에 임의로 일촌관계까지 끊는다면 차후 상대방에게 큰 불쾌감을 주게 된다. 때문에 메신저 상태에서 목록을 삭제할 수는 있어도 차마 일촌관계 까지 삭제할 수는 양심상 허락지 않았다.

 

오늘 날 잡아 정리한 내 메신저 상에 인스턴트 인연들! 그들이 나를 기억하고(삭제 않고) 있다면 언젠가 다시 인연이 이어지겠지만 먼저 아는 척하지 못한 나로서는 그들과 이젠 더 이상 안부 인사조차 하지 못하게 됐다.

 

차마 삭제하지 못한 일촌들도 일정기간동안 연락이 없다면 냉소적인 내 성격에 또 한 번의 대규모 인원(일촌)감축시도를 할 지 모른다. 부디 몇 명 안 남은 메신저 상에 지인들과의 인연이 이어져 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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