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음블로그 포스팅 ]/문화·예술

그림은 긴장이며 해방이다

by 푸른비(박준규) 2009. 12. 25.

 

 

 

부제: [작가인터뷰] 서양화가 김영빈 작가를 만나다

 

 

 

문화생활과는 동떨어진 작은 시골, 그 흔한 극장 하나 없고 대형마트 라도 갈라치면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시골, 특히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문화 활동이나 예술 활동 하는 사람을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들이 밀집된 특정 지역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골에서는 더욱이.

 

하지만 지난 22일 한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월요일 오후, 경기도 가평에서 미술작품 활동을 하며 ‘그림은 긴장인 동시에 해방이다’라고 말하는 서양화가 김영빈(남·54) 작가를 만났다. 이 작가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우연하게도 동네 미용실.

 

어느 날, 다른 취재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동네 미용실에 들러 머리칼을 자르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 동네에 다리가 조금 불편한 분이 계신데 그림을 그리시나봐요? 그런데 와이프 분하고 늘 같이 다니시며 활동하시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더라고요” 라고. 당시엔 “아, 그래요~” 하며 그냥 흘려들었었는데 집에 와서 생각하니 한 번 취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날 취재 의사를 적은 편지 한 통을 미용실 아주머님께 건네 드리며 “혹시라도 그림 그리시는 분이 다시 방문하시면 전해 달라.”고 부탁 했다.

 

그렇게 한 달 가량이 지났을까?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내 휴대폰 속에서 흘러 나왔고 그것이 서양화 작가 김영빈 씨와의 첫 번째 연락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연락이 돼, 며칠 후 인터뷰하기로 약속하고 원고 준비를 했지만 돌발 상황으로 인터뷰 일자가 미뤄지게 됐다.

 

그 후 지난 22일 오후, 가평에 위치한 모 요양시설에서 김영빈 작가와 첫 만남을 가졌다. 첫 만남의 장소가 요양시설이라 조금은 의아했지만 그 이유를 알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 러브레터(Love letter), 2009 / 김영빈 作.

 

봉사활동하며 그림 그리는 화가

 

작가는 세 살 무렵 앓은 소아마비로 인해 양쪽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프로필은 화려하기만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리기 시작한 그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양화를 전공한 그는 올해까지 5회에 걸친 개인전을 비롯해 130여 편에 달하는 초대 및 단체전을 갖고 각종 미술대전에서 20여 회 수상경력을 가진 프로작가였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력만 봐도 (사)한국미술협회 윤리장학위원회 위원, (사)대한민국창작미술협회 회원,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이사, 경기국제미술창작협회 회원 등 그가 건내 준 명함엔 그가 얼마만큼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작인가에 대해 잘 표현돼 있었다.

 

이런 화려한 타이틀을 갖고도 그는 2주에 1회 씩 요양시설에 찾아가 요양원 식구들에게 그림수업을 지도하고 뿐만 아니라 동네에서도 일반인들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바로 그림에 대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있었다.

 

봉사활동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작가는 “3년 전 전시장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그 이후 이곳에 놀러 오게 됐는데 지금껏 이어지게 됐고 부담 없이 놀러오는 기분으로 와서 이곳 식구들에게 그림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어서 계속 찾아오고 있다.”고 답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전시회 열려 

 

작가가 어렸을 적에 가졌던 꿈은 화가가 아닌 과학자였고 그중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중1학년 때는 라디오 회로를 보고 부속을 사다가 조립을 할 수 있었고, 진공관 앰프와 전자기타도 조립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자공학에 마니아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자공학과에 입학하려면 10kg의 물건을 두 손으로 들고 10m 이상 걸어갈 수 있어야 신체검사에 합격할 수 있다고 하여 중도에 전자공학의 길은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짐을 하고 그림에 전념한 작가는 미술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수많은 상까지 받으며 미술계에서는 이름을 떨칠 만큼의 유명 작가가 됐다. 이렇다 보니 개인전시회는 물론 단체전이나 초대전 같은 수많은 전시회를 열게 돼, 평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전시회가 있어서 무척 바쁜 삶을 산다고 작가는 행복한 하소연을 한다.

 

그렇게 많은 그림을 그리다보면 에피소드도 있지 않았냐는 질문에 “처음 누드 데생을 할 때, 떨리고 부끄럽고 해서 쭈뼛거리다가 모델을 잘 관찰(?)하지 않는다고 교수님에게 혼난 경험이 있는데 이것이 기억에 남는 가장 큰 에피소드 같다.”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외부활동은 집사람과 함께

 

다리가 불편한 몸으로 외부활동은 지장이 없을까? 궁금하여 질문을 하니 “작품활동 외 시간에는 주로 집사람과 같이 다니며 외부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그럼 두 분은 어떻게 만났을까?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질문을 하니 “연애로 만나 결혼한 지 어언 30년 쯤 되었다.”고 답했으며 덧붙여 “내조를 해주느라 고생이 많은데 내가 더 열심히 노력할 테니 조금만 더 참고 희망을 가져줘요.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아내에게 해주었다.

 

잠시 후 옆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의 아내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청했다.

 

먼저, 몸이 조금 불편하신 작가님과 결혼할 마음을 굳히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결혼 하실 때 집안의 반대는 없었지, 만일 있었다면 어떻게 설득을 하셨는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이에 작가의 아내 송경득 씨는 “타협을 모르는 자신감과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집안의 반대가 없을 수 있겠어요? 하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잖아요. 설득을 했다기보다 그냥 밀고 나갔습니다.” 라고 짧지만 강한 답을 해주었으며, 역시 덧붙여 남편에게 “건강이 소중하니 건강하기를 바라고, 좋은 작품 많이 제작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풍요로움과 행복감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향유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바람을 전했다.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하는 쓴소리

 

누가 봐도 편하게 생각할 수 있는 외모와 성격을 가진 김영빈 작가는 자신이 장애인이면서도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겐 쓰디쓴 잔소리를 하는 프로 작가다. 아래는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려놓은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 하는 쓴 잔소리” 중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화가가 되겠다고 캔버스에 물감만 하루 종일 바르고 있다고 노력한 것일까? 그것은 물감 낭비이고 재료낭비인 노동에 불과하다. / 취미생활정도로 그림그리기를 하고 있는 분들이 미술협회에 가입을 하여 작가대접을 받고 싶어하는 모습이 역력하여 씁쓸하였다. / 그림에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엄연히 있다.

 

일 년에 고작 몇 점의 작품만 끄적이고 작가인 척 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 작가인 척 명함을 만들어 돌리지 말고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편이 훨씬 적절하다는 생각을 한다. / 그림 세계도 냉정한 것이 현실이다. 현대미술은 기초가 필요 없다고 혹자는 주장하지만, 기초 없이 세워지는 건물이 없듯이, 기초가 없는 그림 작업은 언젠가 막다른 벽에 부딪힌다.

 

기초의 시작인 뎃생을 하는 이유는 물체를 잘 그리려는 목적보다 사물을 잘 보는 훈련인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의 시각이 보통사람들과 다르다는 말도 그런 맥락이다. / 어느 정도 기초로 탄탄하게 자리 잡았을 때,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찾아야 한다. 추상작업을 하는 작가들도 이 탄탄한 기초위에서 출발을 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비장애인들도 힘들어서 많이 포기하는 작업을 장애인들이 하기에는 몇 배의 노력과 고통이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뻔 한 일이다. / 장애인 화가 지망생을 가르치려면 속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기초가 전혀 안 되어있는 그림을 봐달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진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사유는 고사하고 노력한 흔적도 없다. 그냥 물감만 발라놓은 형상이다. 고칠 점을 찾아 말해주면, 무슨 이유가 그렇게 많은지 / 그림은 그림으로 평가되어진다.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어렵게 그렸다는 동정이나 이해심의 구걸은 통하지 않는다.

 

두 팔이 불편하여 입으로 만으로도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이 있지 않은가? / 그 고통을 뛰어넘지 못할 자신이 없으면 그냥 취미로 그려라. 프로근성을 가지고 그림이 아니면 죽겠다는 각오가 되어있으면 덤벼들어라.

 

화가 지망 장애인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를 물어 보면 장애를 입어 마땅히 할 것이 없어서 그림을 선택 했다던지, 재활 수단으로 혹은 정서함양을 위해 그림을 택했다고 한다. 이런 분들은 취미로 그림을 그릴 것을 권한다. / 프로의 길은 정서함양과 같은 고상한 단어와는 무관하고, 거칠고 험난하다. 그 고통 속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잠깐의 행복을 맛보고는 또 다른 고통을 안는 사람들이 프로들이다.

 

많이 사유하고,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그려라! / 이것은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에게 부탁드리는 말과 동시에 나 자신 스스로에게도 때리는 따끔한 채찍이다.

 

 

이렇듯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해 프로의식을 갖고 화가를 꿈꾸는 장애인들에게도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프로정신을 전파하고 있다.

 

인터뷰를 정리하며 김영빈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가장 큰 목적이 무엇이며 그림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어떻게 표현 할 것인지 물었더니 “자신의 정체성, 즉 자아를 깨닫고,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예술작품 창작이 살아가는 목적이다.” 고 답했고, “그림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예술(그림)은 긴장인 동시에 해방이다.”고 역시 간단명료하지만 가슴 깊숙이 생각게 하는 답을 해주었다.

 

문화생활과는 거리가 먼 우리 동네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멋진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이 따듯해진 하루였다.

...

 

위 기사는 pmn뉴스에도 게재 되었습니다. (http://www.poemsa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