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음블로그 포스팅 ]/사는이야기

내가 명절증후군이 된 이유

by 푸른비(박준규) 2008. 2. 5.

부제: 가족과의 서먹함이 준 명절증후군

 

 

시대가 변할수록 그동안의 명절 풍습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같은 경우는 모두가 즐거워야할 명절을 오히려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급증해 일명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어 까지 생겨난 실태다. 명절증후군이란 명절을 앞두고 갖가지 벌어질 일들에 대해 미리 신경 쓰고 불편해 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로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식장만을 해야 하는 어머니 세대에서나 나타나던 것이었으나 최근 핵가족화가 일반화 되면서 일반적인 가정주부들은 물론이고 직장을 다니는 젊은이들이나 심지어는 학생들까지도 명절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할 정도가 돼버렸다.

 

그 늘어난 명절증후군들 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심각한 상태를 보이고 있다. 내가 처음 이런 증세를 갖게 된 것은 중학교 3학년 말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다음부터다. 가족이라고는 어머니, 형, 나 이렇게 단촐 하게 살았으며 아버님과 어머님은 별거에 가깝게 지내신 터라 내 기억엔 아버지란 존재는 불편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해서 거의 17년 동안 세 식구만 지내다가 우리 집 중심이 되셨던 어머님이 돌아가시게 되자 그 다음 해부터는 매 년 명절 때마다 형님이 아버님을 찾아뵙는데 나는 타지에 사는 이유와 이런저런 사정으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나 내가 가족들 모임에 자리를 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것은 내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 아닌 핑계 때문이다. 내 장애의 특성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 특히 낯설거나 내 심리적으로 적응하기 힘들 곳에서는 내 몸이 더 경직이 되어 내 자신은 물론이요 상대방들에게 까지 불편한 마음을 들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리를 피해 왔다. 특히 어릴 적부터 무섭고 불편했던 아버님 앞에선 내 몸은 그야 말로 조정 안 되는 로버트 몸이 된다.

 

더욱이 제사를 모시는 경우엔 나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유는 일반인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조상님께 술 따라 올리는 절차 때문. 나는 평소에도 컵 하나 제대로 들지 못하는 장애인인데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내게 시선 집중된 그런 곳에서 조상님께 술 따르기란 차라리 내게 죽으라는 의미와 같을 정도로 내겐 무리한 일이며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님이 돌아가신지 올해로 스무 해가 되는데 한 번도 내 손으로 술을 올린 적이 없다. 매년 형님이 대신 올려 주셨고 2-3년 전부터는 어린 조카 녀석들이 이 못난 삼촌 역할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님께 두 번씩 술잔을 올린다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역시나 내 처지의 한심함과 조카 녀석들의 대견함이 교차하는 마음이 들곤 한다. 허나 이것은 1년에 1회 어머니 기일 때 벌어지는 광경이고 명절 때는 아버님 댁에 가서 할머님 제사까지 치러야 하니 내겐 정말 명절은 그야말로 없어졌으면 하는 날들에 불과하다. 이런 마음을 누가 이해할까?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앞서 밝힌바와 같이 우리 가족은 단촐 하다. 아버님, 형네 식구, 나 이게 전부지만 어찌 보면 모두가 각자 생활하는 삶을 산다. 즉, 서로 연락을 거의 안 하고 산다는 것. 명절이나 어머니 기일 때 하루 이틀 얼굴 보는 게 전부다. 더 이상의 연락은 없다시피 한다. 아버님이 어릴 적부터 내겐 불편한 대상으로 여겨져 지금까지 그 후유증은 남아 있지만 이제 연세가 드시다 보니 먼저 연락도 가끔 해주셔서 그나마 조금 대화를 주고받을 여유가 생겨서 다행이지만 형네 가족과는 반대로 연락 없이 지낸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누구에게나 먼저 연락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로 인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하거나 내 연락을 싫어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어릴 적부터 있어서다. 그냥 내 가족과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에 위로 하며 지내게 돼 버렸고 오히려 가족보다는 지인들이 내게 더 자주 연락 해주는 현실이 됐다. 이렇다 보니 솔직히 가족을 생각하면 나는 편안함 보다는 불편한 느낌이 들 때가 생긴다. 차라리 일 년에 몇 번씩 만나고 메일이나 문자,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는 지인들이 더 가깝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이 이어지다보니 가끔 희망을 꿈꿔 보기도 한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져 내 반쪽을 만난다면 지금 내 가족들과의 분위기를 180도 바꾸어 놓고 정말 가족의 중요성을 매일매일 확인하며 살아갔으면 하는 희망 말이다. 그러려면 상당히 착하고 센스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는 말인데, 역시 희망으로 끝나 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애인들이 모두 나처럼 명절을 싫어하진 않을 것이지만 나를 떳떳하지 않게 생각하는 가족을 가진 장애인들은 조금이나마 내 글에 동감하지 않을까 싶다. 이 세상 어딜 가도 가족만 생각하면 힘이 나야 제대로 된 가족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처럼 2008년 설날을 앞두고 내 가족들의 침묵과 내 앞날에 대한 희망을 오버랩(Overlap) 시켜보며 며칠 후 다가올 그 낯설고 불편한 자리에서 큰 실수 없이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Daum 블로거뉴스
블로거뉴스에서 이 포스트를 추천해주세요.
추천하기

 

Posted by 박준규  

푸른비전하는 세상사는 이야기  

 E-Mail : poemsay@hanmail.ne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