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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무언의 굴레

by 푸른비(박준규) 2009. 8. 23.

- 무언의 굴레

 

 

우두커니 몇 십 년 한 자리에 서서

세상사 지켜본 저 나무

수년을 흐르고 고이고 다시 흐르는 저 강

일 년에 한번 피고 지는 들꽃

그리고 블랙홀 같은 내 안에 숨은 너는

참 말이 없구나.

 

종일 셀 수 없이 재잘 되는 참새와

나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

철썩철썩 강변 언저리 물살

조용하지 않은 것들은 저리도 활기찬데

무언을 지향하는 너희는 무엇이냐?

 

쓸모없는 배설 같은 소리는

그야말로 배설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무언도 가끔은 소화되지 않은 독설(毒說)이다.

 

땅의 기운을 받아 나무도 소리를 내고

흐르는 강물도 솟아 오른 수석(水石)들 벗 삼아 소리를 내고

이름 모를 들꽃들도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 소리를 내라.

 

그리고 블랙홀 같은 내안에 숨은 그대여

이젠 내 안에서 나와 갈 길을 가라.

나는 더 이상 그대를 숨길 수 있는 블랙홀이 아니다.

저 부는 늦여름 바람에도 열릴 내 마음

그대도 이제 자리를 비우고 떠나라.

 

수많은 세월 속에서

새벽의 적막 같은 무언을 미학이라 믿었던 내 자신을 잃었다.

이제 나는 내 안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는

생기(生氣) 있는 소리들에 갇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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