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언의 굴레
우두커니 몇 십 년 한 자리에 서서
세상사 지켜본 저 나무
수년을 흐르고 고이고 다시 흐르는 저 강
일 년에 한번 피고 지는 들꽃
그리고 블랙홀 같은 내 안에 숨은 너는
참 말이 없구나.
종일 셀 수 없이 재잘 되는 참새와
나무를 뒤흔드는 거센 바람
철썩철썩 강변 언저리 물살
조용하지 않은 것들은 저리도 활기찬데
무언을 지향하는 너희는 무엇이냐?
쓸모없는 배설 같은 소리는
그야말로 배설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친 무언도 가끔은 소화되지 않은 독설(毒說)이다.
땅의 기운을 받아 나무도 소리를 내고
흐르는 강물도 솟아 오른 수석(水石)들 벗 삼아 소리를 내고
이름 모를 들꽃들도 살랑 부는 바람에 흔들 소리를 내라.
그리고 블랙홀 같은 내안에 숨은 그대여
이젠 내 안에서 나와 갈 길을 가라.
나는 더 이상 그대를 숨길 수 있는 블랙홀이 아니다.
저 부는 늦여름 바람에도 열릴 내 마음
그대도 이제 자리를 비우고 떠나라.
수많은 세월 속에서
새벽의 적막 같은 무언을 미학이라 믿었던 내 자신을 잃었다.
이제 나는 내 안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는
생기(生氣) 있는 소리들에 갇혀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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