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텅 빈집
내 집은 늦은 봄부터
무더위가 저문 9월 초까지
나만 밖으로 나가면 시끄러웠다.
그러다가 저녁이 돼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 지고
내가 잠들 늦은 새벽부터 다시 시끄러워지는 집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혼자 사는 내 집은 나를 제외시키고
내가 없는 낮 동안 무언가와 합세해 종일 수다를 떨었다.
9월 중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돌자
내 집은 벙어리가 돼
하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보니 천장 모퉁이와
책상 후미진 곳에서 발견된 거미주검들.
두 계절 동안 나 없는 틈을 타
내 집을 지키느라 쳐놓은 거미줄에 제가 걸려 죽고
엉금엉금 책상 한 구석으로 기어 들어가 죽어 있었다.
더위가 물러간 며칠 사이
천장을 오르내리고 내 책상에서 활개 치던 거미들이 죽자
내 집은 정말 텅 빈집이 됐다.
어딘가 숨어서 내 모습을 훔쳐봤을 거미가 사라진 이 새벽
나는 그들을 위한 추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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