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텅 빈집

by 푸른비(박준규) 2011. 9. 17.

- 텅 빈집

 

 

내 집은 늦은 봄부터

무더위가 저문 9월 초까지

나만 밖으로 나가면 시끄러웠다.

 

그러다가 저녁이 돼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조용해 지고

내가 잠들 늦은 새벽부터 다시 시끄러워지는 집

 

두 계절이 지나는 동안

혼자 사는 내 집은 나를 제외시키고

내가 없는 낮 동안 무언가와 합세해 종일 수다를 떨었다.

 

9월 중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돌자

내 집은 벙어리가 돼

하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었다.

 

어찌된 일일까?

집안을 구석구석 살펴보니 천장 모퉁이와

책상 후미진 곳에서 발견된 거미주검들.

 

두 계절 동안 나 없는 틈을 타

내 집을 지키느라 쳐놓은 거미줄에 제가 걸려 죽고

엉금엉금 책상 한 구석으로 기어 들어가 죽어 있었다.

 

더위가 물러간 며칠 사이

천장을 오르내리고 내 책상에서 활개 치던 거미들이 죽자

내 집은 정말 텅 빈집이 됐다.

 

어딘가 숨어서 내 모습을 훔쳐봤을 거미가 사라진 이 새벽

나는 그들을 위한 추모 글을 쓰고 있다.

'[ 다음블로그 포스팅 ] > 푸른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달맞이꽃 사랑법  (0) 2011.10.05
(詩) 일탈  (0) 2011.09.29
(詩) 별 자리  (0) 2011.09.15
(詩) 불변과 변함의 적대적 이치  (0) 2011.09.14
(詩) 가을계곡  (0) 2011.09.1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