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 추억
깊지 않은 밤.
깊은 밤으로 흐르는 시간
기억에서 멀어진
라디오 속 가곡을 들으며
청승으로 그대를 불러 본다.
그래봐야 짧았던 세월.
우리가 남긴 추억은
문장력 좋은 소설가도
원고지 몇 십 장이면
더 이상 글 맥이 막힐 짧은 꿈같은 얘기.
올해 지난여름은
그대가 좋아한 달맞이꽃도
내 눈엔 담지 못했지.
담아봐야 아픈 꽃
밤새 노랗게 내 마음에 물들어
불면증 피울까봐
차마 내 눈엔 담지 못했지.
길고 긴 세월 속
소매 끝에 풀린 실오라기 같은 추억이지만
비겁에 비겁으로
망친 사랑을 추억이라 포장해 보지만
그래도 가끔
가을이라는 만취(漫醉)된 계절에
그 포장 풀어볼 수 있음에
나는 주체 없는 나만의 신(神)에게
두 손 모아 합장기도를 드린다.
가을로 들어가는 초입.
깊지 않은 밤이 깊은 밤으로 바뀐 시간
아직도 라디오에선 귀에 익지 않아도
귀에 익은 것 같은 가곡이 흐르고
만취된 계절에만 끄집어낼 수 있는 추억을
나는 주섬주섬 꺼내어 혼자 취해 있다가
그대라는 커다란 존재에 머리를 조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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