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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만취 추억

by 푸른비(박준규) 2016. 10. 18.

만취 추억

 

 

깊지 않은 밤.

깊은 밤으로 흐르는 시간

기억에서 멀어진

라디오 속 가곡을 들으며

청승으로 그대를 불러 본다.

 

그래봐야 짧았던 세월.

우리가 남긴 추억은

문장력 좋은 소설가도

원고지 몇 십 장이면

더 이상 글 맥이 막힐 짧은 꿈같은 얘기.

 

올해 지난여름은

그대가 좋아한 달맞이꽃도

내 눈엔 담지 못했지.

담아봐야 아픈 꽃

밤새 노랗게 내 마음에 물들어

불면증 피울까봐

차마 내 눈엔 담지 못했지.

 

길고 긴 세월 속

소매 끝에 풀린 실오라기 같은 추억이지만

비겁에 비겁으로

망친 사랑을 추억이라 포장해 보지만

그래도 가끔

가을이라는 만취(漫醉)된 계절에

그 포장 풀어볼 수 있음에

나는 주체 없는 나만의 신()에게

두 손 모아 합장기도를 드린다.

 

가을로 들어가는 초입.

깊지 않은 밤이 깊은 밤으로 바뀐 시간

아직도 라디오에선 귀에 익지 않아도

귀에 익은 것 같은 가곡이 흐르고

만취된 계절에만 끄집어낼 수 있는 추억을

나는 주섬주섬 꺼내어 혼자 취해 있다가

그대라는 커다란 존재에 머리를 조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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