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둑이 제 발 저린 날
내 앞에서 나를 보며
검은머리 짐승 한 마리가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순간
내가 무슨 잘못을 했을까?
전생에 죄를 지었을까?
오금이 저릴 만큼의 공포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그 짐승은 거대하고 빨랐다.
크고 두터운 네 발
그 발들에 감춰진 날카로운 발톱
그 발로 내게 뛰어 왔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두 팔로 머리를 가리고 몸을 낮추며
눈을 감고 반항의 비명을 질러댔다.
그렇게 그 짐과 사투를 벌이려는 순간
바람처럼 빠른 그 짐승의 앞발 하나가
내 이마를 짓눌렀다.
시투를 포기하고 두 눈을 힘겹게 떠보니
얼굴의 반(半) 만한 큰 눈을 가진 그 짐승은
내 이마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포효를 내질렀다.
그 포효소리는 귀에 익은 ‘야옹’
빨리 일어나 밥 달라는 나의 고양이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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