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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문화·예술

'하이쿠 시?? 이게 시야?'

by 푸른비(박준규) 2006. 9. 23.

부제: 상상으로 읽어야 하는 짧은 시

 

“하이쿠 시란

일본에서 파생된 5.7.5조의 짧은 시의 장르 중 하나입니다.

허나 한줄 시로도 변형되어 쓰여 지기도 하며 5.7.5조의 음률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위 내용은 기자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일명 하이쿠 시(詩) 마지막 단락에 넣는 문장이다.

 

‘짧은 시 이해하기’는 이렇게

 

우리는 그동안 장문의 시 또는 시에서 나타내고자하는 내용이 절반이상 표현된 작품들에 길 들여져 있었다. 이는 우리가 학창시절부터 접하고 배운 대부분의 시들이 그랬으며 가끔 저항(抵抗)시 같은 몇 편의 작품들만 비유법으로 약간의 단어구사만 바꾸어 쓰여 졌을 뿐. 하지만 이 부분마저도 친절한 선생님들 설명에 의하여 알기 쉽게 그 내용은 파헤쳐져 우리 가슴속에 동일한 모습으로 새겨진 게 사실이다.

 

나는 학교 다닐 때 국어를 못했다. 특히 시험에서 시 관련 부분은 거의 모두 틀렸던 것으로 기억된다. 왜 그랬을까?

 

나는 시를 비롯해 모든 문학작품들을 읽을 때 그대로 읽는 것보단 상상을 해서 읽는 버릇이 있다. 물론 모두 그렇게 읽고 있겠지만 나에겐 그 부분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미 정해져 있는 책의 주제에 대해 반감마저 갖고, 때문에 이미 내용이 뭔지 알아 버린 작품들에 대해선 읽지를 않는 나쁜 버릇도 얻었다.

 

이렇듯 내가 읽고 내 상상으로 완성하여 그 작품에 대한 주제와 교훈을 느껴야지만 자기만족을 했다. 그러다 보니 기존 현대시 같은 작품들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다. 좀 거칠게 표현하자면 ‘이미 구차하게 다 설명 해놓은 걸 왜 읽어?' 라는 식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인가  ‘하이쿠시‘와 ‘한줄시’을 알게 댔다. 이 시들은 정말 짧은 시였다. 일반 사람들이 읽으면 ‘하이쿠 시?? 이게 시야?’ 라고 할 정도로 어찌 보면 성의 없어 보이는 시들이었지만 내겐 충격이상의 시들로 다가왔다. ‘아, 바로 이거야! 내가 찾던 시가!’ 라고 할 정도로 말이다.

 

짧은 시들의 참맛을 느끼는 방법

 

첫 번째 짧은 시는 기존에 읽던 장문의 시들을 읽는 마음으로 읽으면 안 된다. 기존 시들은 이미 주제가 내려져 있기에 금방 이해되며 식상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두 번째 상상으로 읽어라.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일반적인 주제가 이미 내려진 시들과는 짧은 시는 다르다. 즉, 어떻게 상상하고 읽는 것이냐에 따라 그 시에서 얻는 주제나 느낌은 천차만별이 된다는 것이다. 아래는 기자의 하이쿠시 중 한 편이다.

 

▲ '공존' 이라는 사진 / ⓒ박준규

 

 

“거미줄 쳐진 나뭇가지 위에 잠자리 한 마리, 거미와 등지고 휴식을 취하고 있네“

 

하이쿠라는 장르로 구분 짓고 쓴 시다. 허나 하이쿠의 5.7.5조, 17 자로는 표현하기 힘들 때 한 줄로 써버리는 방법도 있다. 이런 형식의 시를 한줄시 또는 외줄시, 단시(短詩) 라고도 일컫는다.

 

위의 시는 ‘공존’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쓴 시다. 하지만 그 외적으로 표현된 그 어떤 구사도 없다. 즉, 주변상황들이 설명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중요하다. 바로 이 생략된 부분(상황·배경)을 독자들의 몫으로 돌려주는 것이 하이쿠(짧은 시)의 큰 매력인 것이다. 해서 위의 시의 주제 공존이지만 생략된 부분을 어찌 상상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주제가 담긴 시로 거듭날 수 있다.

 

‘일본 시(詩) 라서 갖는 편견을 버리자’

 

하이쿠 시의 파생국은 일본이다. 한·일 관계를 볼 때 그리 호감 가는 나라의 시 장르는 아니다. 솔직히 기자도 이 부분에 있어 납득시키고픈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덧붙여 가져 본다. 이 하이쿠란 시는 일본에서 파생 되어 온 것이지만 이미 우리나라 기성 작가들도 짧은 시를 썼다. 그러므로 꼭 짧은 시를 '일본 파생 시'라고 색 안경을 쓰고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중 윤보영이라는 작가의 짧은 시 두 편을 살펴보자.

 

 

사랑이란, 눈감아도 보이고

눈을 떠도 보이는 마음이 부리는 요술. <마음의 요술>

 

...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내 가슴에 활짝 핀 '그대'라는 꽃입니다.

지지 않고 늘 피어 있는. < 좋아하는 꽃 >

 

 

 

위 시들은 하이쿠 형식에 맞춘 것은 아니지만 읽고 여운으로 남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은가?

 

짧은 시는 여운의 연장이다. 시란 읽는 그 자리에서 모두 이해하고 그 자리에서 잊는 작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두고 두고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그 무언가를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그것이 나만의 참된 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짧은 시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파생된 작품이라 일부에선 편견의 시선으로 읽어 짧은 시의 대한 이미지를 자칫 흐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기자는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문학도 하나의 세계 언어다. 음악과 영화와 같은 지구촌 모든 사람의 영혼을 가슴을 울릴 수 있는 들리지 않는 언어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짧은 시의 파생 국이 일본일 지라해도 그 시들의 내용은 우리들만의 정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이므로 만일 짧은 시, 하이쿠 시를 읽는다 해도 편견 없는 마음의 눈으로 읽고 그 작품에 빠져 본다면 또 하나의 새로운 문학 장르에 매료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더 이상 '하이쿠시는 일본 것’이라는 꼬리표를 붙혀 반감을 갖지 말고, ‘짧은 시의 작품들 중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길 바라본다.


▶ 관련 글: [06.07.31 '상상력으로 읽는 시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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