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의천사에게
그리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처럼 너무도 쉽게 돌아서 가버린 너를 보며
당황스런 마음과 배신의 분노로
그리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고목.
다만, 오늘 같이 스산한 날엔
한 계절의 중간에서 빠져 나온 듯한 미묘한 날엔
따뜻하면서도 도도했던 네가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겠는가?
하루, 열 두 번이 적다고 울려대던 네 안부 전화에
나는 잠시 구름을 타고 살았으니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네가 떠난 후
감사하게도 나는 ‘사랑’’이란 것을 스스로 배웠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됐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던 수 천 가지의 깨달음.
그래서 지금도 나는 너를 그리워하진 않는다.
깨달음을 갖게 해 준 것은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을 그리워한다면
무언가 깨닫기 전의 무지(無知)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너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함박웃음을 선물하고 있겠지.
귀뚜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시가 안 써진다고 투정 전화를 하니
“그럼 잡아서 죽여세요~”라고 하며 까르르 웃던 악의천사 같던 너는.
그리워서가 아니라
참 고맙던 내 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
속 깊은 철부지였던 악의천사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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