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악의천사에게

by 푸른비(박준규) 2011. 8. 29.

- 악의천사에게 

 

 

그리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처럼 너무도 쉽게 돌아서 가버린 너를 보며

당황스런 마음과 배신의 분노로

그리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 깊은 고목.

다만, 오늘 같이 스산한 날엔

한 계절의 중간에서 빠져 나온 듯한 미묘한 날엔

따뜻하면서도 도도했던 네가 궁금해진다.

 

그렇지 않겠는가?

하루, 열 두 번이 적다고 울려대던 네 안부 전화에

나는 잠시 구름을 타고 살았으니

숱한 세월이 흘렀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네가 떠난 후

감사하게도 나는 ‘사랑’’이란 것을 스스로 배웠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도 갖게 됐다.

옆에 있을 때는 몰랐던 수 천 가지의 깨달음. 

 

그래서 지금도 나는 너를 그리워하진 않는다.

깨달음을 갖게 해 준 것은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만일 그것을 그리워한다면

무언가 깨닫기 전의 무지(無知)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먼 곳에서

너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함박웃음을 선물하고 있겠지.

귀뚜리 울음소리가 시끄러워 시가 안 써진다고 투정 전화를 하니

“그럼 잡아서 죽여세요~”라고 하며 까르르 웃던 악의천사 같던 너는. 

 

그리워서가 아니라

참 고맙던 내 생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오늘

속 깊은 철부지였던 악의천사가 보고 싶다.

 

 

41075

'[ 다음블로그 포스팅 ] > 푸른비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詩) 가을기차역 잠자리  (0) 2011.09.01
(詩) 나무 일기  (0) 2011.08.30
(詩) 날곤충들의 비애  (0) 2011.08.28
(詩) 아름다운 희생 시(詩)  (0) 2011.08.27
(詩) 마음의 청력  (0) 2011.08.2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