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실 악몽
나는 어릴 적부터
주머니 많은 옷을 입었다.
주머니가 많지 않으면
주머니 깊이가 깊은 옷으로 입기 좋아했다.
그리고 그 주머니들 속에는
갖가지 잡동사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연필, 메모지, 동전, 구술, 사이다 병뚜껑 등
동전 빼고는 그리 쓸모없는 것들을 넣고 다녔다.
흐르는 세월에 나이는 흐르지 않고 쌓였다.
하지만 내 옷들 주머니 속 잡동사니들은
내 나이처럼 쌓이지 않고
흐르는 세월 따라 어디론가 흘러가 버렸다.
점점 비어져 가는 텅빈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마다
한 움큼씩 잡히는 허무함.
어릴 적에는 주머니에서 무엇을 분실하면
다시 채워 넣을 수 있는 시간과 가능성이 보여
크게 당황하지 않았으나
다 자란 후 이미 텅 빈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를 분실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감당 못할 불안감 때문에 잠 못 이룰 때가 허다하다.
실체이던 가상의 그 무엇이던
분실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곤두서는 신경(神經)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다짐에 다짐을 해봐도
경계태세의 고양이 눈동자처럼
내 마음은 불안으로 경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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