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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때늦은 고해

by 푸른비(박준규) 2018. 1. 8.

- 때늦은 고해

 

 

1981년 초가을 즈음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살생을 했었다.

그 일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던 그 시절

나는 그들의 부지런함이 질투 났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다음해()에 대해 궁금했을까?

지금도 그때의 살생에 대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살생을 하고서도

지금껏 큰 죄의식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살생 후 그 다음해 초여름

살생을 하고 묻었던 그 무덤 주변에서

또 다시 부지런히 흙길을 지나고

숲속을 헤치며, 내 키보다 몇 배 큰 나무 위를

그 생명체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우쭐했는데

그 생명체들은 무덤 주변을 또 다시 뚫고 나와

보란 듯 부지런을 떨어댔다.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조그만 발로 남들 몰래 급하게 막아버린 개미구멍 하나

그 다음해 보았던 개미들이 지난해

나에게 생매장 당했던 그 개미였을까 의문이 든다.

나는 왜 그 개미들이 그 개미들일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마도 죄를 잊고자 했던 하나의 자위행위였을 것이다.

 

때문에 37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구멍을 막아 죽어 갔을 개미들이 있었다면

그 영혼들에게 때늦은 고해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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