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늦은 고해
1981년 초가을 즈음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살생을 했었다.
그 일은 3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던 그 시절
나는 그들의 부지런함이 질투 났었을까?
아니면
그들의 다음해(年)에 대해 궁금했을까?
지금도 그때의 살생에 대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살생을 하고서도
지금껏 큰 죄의식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살생 후 그 다음해 초여름
살생을 하고 묻었던 그 무덤 주변에서
또 다시 부지런히 흙길을 지나고
숲속을 헤치며, 내 키보다 몇 배 큰 나무 위를
그 생명체들이 오르내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완전범죄를 저질렀다고 우쭐했는데
그 생명체들은 무덤 주변을 또 다시 뚫고 나와
보란 듯 부지런을 떨어댔다.
37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조그만 발로 남들 몰래 급하게 막아버린 개미구멍 하나
그 다음해 보았던 개미들이 지난해
나에게 생매장 당했던 그 개미였을까 의문이 든다.
나는 왜 그 개미들이 그 개미들일 거라 생각했던 것일까?
아마도 죄를 잊고자 했던 하나의 자위행위였을 것이다.
때문에 37년이 지난 지금
그때 내가 구멍을 막아 죽어 갔을 개미들이 있었다면
그 영혼들에게 때늦은 고해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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