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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詩) 제 명(命)대로 살기

by 푸른비(박준규) 2022. 7. 26.

- 제 명()대로 살기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에는

연한 안개처럼 거미줄이 핀다.

시들지 않는 안개꽃처럼

질기디질긴 실타래 같은 거미줄이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을 잠식해 간다.

하지만

나와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공간을 잠식하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새벽

천장에서 내 콧등까지 내왔다가

내 눈 깜빡임에 놀라 부리나케 올라가도

잠자는 고양이 앞발을 타고 올라가도

우리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저 고양이도 나를 닮아 게으른 걸까?

아니면

내가 저 고양이를 닮아 온순한 걸까?

그렇게 우리는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만의 공간을 잠식해 가는 거미에게

한없이 방대하다.

 

겨울이면 거미들은 모두 말라 죽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천장과 벽 구석 틈틈이 또 남아 있겠지.

7월의 어느 날 새벽인 지금도

거미 두 마리가 천장에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리길 기다리고 있지만

묵은쌀 포대에서 잉태한 작은 나방들은

끝내 걸려들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래

길지 않은 생이다.

나와 고양이

저 거미들과 작은 나방들

제명대로 살아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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