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명(命)대로 살기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에는
연한 안개처럼 거미줄이 핀다.
시들지 않는 안개꽃처럼
질기디질긴 실타래 같은 거미줄이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이 집안 곳곳을 잠식해 간다.
하지만
나와 고양이 한 마리는
우리 공간을 잠식하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새벽
천장에서 내 콧등까지 내왔다가
내 눈 깜빡임에 놀라 부리나케 올라가도
잠자는 고양이 앞발을 타고 올라가도
우리는 거미를 탓하지 않는다.
저 고양이도 나를 닮아 게으른 걸까?
아니면
내가 저 고양이를 닮아 온순한 걸까?
그렇게 우리는
늦봄부터 늦가을까지
우리만의 공간을 잠식해 가는 거미에게
한없이 방대하다.
겨울이면 거미들은 모두 말라 죽고
그들이 남긴 흔적들은
천장과 벽 구석 틈틈이 또 남아 있겠지.
7월의 어느 날 새벽인 지금도
거미 두 마리가 천장에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리길 기다리고 있지만
묵은쌀 포대에서 잉태한 작은 나방들은
끝내 걸려들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래
길지 않은 생이다.
나와 고양이
저 거미들과 작은 나방들
제명대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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