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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블로그 포스팅 ]/푸른비 단상

Love Virus

by 푸른비(박준규) 2004. 7. 8.

......................................................................2004.07.08

 

- Love Virus

 


  90년대 초 한창 개인용 pc가 발달할 무렵 나는 학교 전산실에서 살았다. 수업이 끝난 후 이어지는 나의 pc 가지고 놀기는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계속 되던 때, 급기야 전산실 키를 맡아 가지고 다니며 pc에 열성을 보이던 학창시절. 얼마 후 그 불붙은 마음에 기름을 붓는 일이 한 번 더 일어났다. 그 일은 다름 아닌 pc통신이란 것. 신체구조상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는 나에게 거의 날개를 달아주는 획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던 것이다. 그 뻣뻣한 타자기 대신 부드럽게 눌러지고 틀린 부분 수정은 기본에 선이며 도표며 마음먹은 대로 작성되던 워드프로세서라는 소프트웨어에 감사하며 사용하던 시기 pc통신은 나에게 외부와의 소식을 접하고 각종 정보를 얻게 해주는 요술 상자 같은 존재로 다가왔다. 그렇게 몇 달 학교에서 기초지식을 습득하면서 형이 선물해준 286AT라는 개인용pc를 처음 집안에 들이고 얼마나 기뻤었는지 그때의 감회는 지금도 새롭다.

 

  그렇게 집안에 pc를 들이고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컴퓨터로 통신을 한다면 일반전화선을 모뎀(modem)이라는 컴퓨터 주변기기에 연결해 사용하는 것으로 요금은 한 통화 당 시외요금을 물고 속도는 2400bps, 지금의 전용선과 비교하면 거의 몇 십 배 느린 속도로 pc통신을 하며 신기에 젖어 감탄에 나날을 보내곤 했던 것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채팅이나 자료실이 있어서 정보검색 보단 채팅이나 프로그램 자료들 이용하는데 주로 이용한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지 않아도 집과 학교뿐이 몰랐던 내게 그 방대한 자유의 문이 열렸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는가? 생전 처음 채팅이란 것도 해보고 컴퓨터 사용에 유용한 갖가지 프로그램 다운받아 테스트 해보고 정신없는 날들이었다. 덕분에 컴퓨터의 대해 나름대로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좋은 친구도 알게 되고 얼마 후 지역 중심으로 하는 BBS라는 pc통신 서비스도 구축해 3-4년 운영도 해 보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그때나 단 한 가지는 신경을 끄고 살 수는 없다. 컴퓨터의 눈부신 발달과 인터넷 전용선에 따른 pc통신의 급변한 속도. 그 빠른 발전에 뒤쳐질 새라 바이러스란 존재 또한 기아급수 적으로 늘어나 있는 현실이다. 현재 알려진 컴퓨터 바이러스 및 악성코드만 해도 몇 십 만종이 된다. 이들 바이러스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바보로 만들고 지독한 놈을 컴퓨터 하드웨어조차 치명적으로 손상시킨다. 꾸준히 백신도 업데이트 중이나, 불어나는 바이러스엔 꼭 몇 발짝 뒤쳐지기 마련이다. 이러면서 컴퓨터란 문명의 기기는 날로 발전되고 우리는 그 기계를 필수품 삼아 삶을 편하게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해봤다. 컴퓨터 바이러스처럼 우리가 흔히 사용한 인터넷이란 매체를 통해 우리도 어떤 바이러스에 걸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쉬운 예로 인터넷 중독과 같은 그런 피해 말이다. 뿐만 아니라 채팅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었을까 생각을 하면 참 착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이 울고 웃었다함을 그 안에 희로애락이 담긴 것이고 특히 통신을 하는 연령은 젊은 층인데 그렇다면 희로애락 중 애(愛)가 더 많이 결부되었을 터, 사랑으로 인해 울고 웃는다면 이 또한 컴퓨터가 우리에게 바이러스를 감염시킨 것이 아닌가? 일명 Love Virus.....

 

  해서 다시 생각, 아니 상상을 해 본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감염 속도가 아주 빠르다. 그러나 좋은 바이러스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장단점을 이용해 러브바이러스를 유포시켜 보는 상상을 해봤다. 우선 그 어떤 사랑의 감정이던 상대에게 전할 수 있다면 초고속으로 그에게 감염시키는 것이다. 사랑에 감염된 것을 치료하려면 그에게 나의 대한 분노, 화 등 안 좋은 면을 알게 해야 하는데 나 자신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그 사람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겠는가. 하지만 이런 바이러스는 두 사람의 기본 현실이 맞을 때 최대 효과를 내는 조금은 약한 바이러스 형태고 누구나 쉽게 감염되어 그 사람 주위로 번져 나가는 희생(Sacrifice)적 바이러스를 유포시켜 보다 삶이 따듯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뜬금없는 상상을 해 본다. 상상만으로 행복한 일 아닌가.

 

  나는 지금 러브 바이러스에 걸려 아파하는 사람을 만나, 함께 희생적 바이러스를 유포 시키고 싶다.
 

......................................................................2004.07.08 am 06:30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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